전남 강진, 시인 김영랑의 고택을 다녀와서
  글쓴이 : 김상수     날짜 : 10-11-19 18:59     조회 : 27523    

가을 바람이 낮게 불었다.
그 강진의 바람결은 시인의 집 지붕을 덮은 이엉에서 시를 길어내고 있었다.
2010. 11. 18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마음 고요히 고운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의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독(毒)을 차고 -  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 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